이야기 스님의 미얀마 이야기 1.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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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8. 28 이야기 스님의 미얀마 이야기 1.본보기
10여 년 전 미얀마에서 버마족 지역 운동가와 친해져 그에게서 미얀마어를 배웠다. 그는 미얀마인이 싫어하는 사람들에 대해 순위를 매겨 말했다. 1위는 미얀마 뱀파이어(국민의 피를 빨아먹으며 사는 군부), 2위는 깔려 사람(서쪽 민족인 인도인과 무슬림), 3위는 중국인, 4위는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한국인을 싫어하는 것은 그의 주관도 많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20여 년 전 외국인에게 배타적이었던 한국에서 힘들게 일했고 급여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얀마에 돌아와 보니 한국 사업가들은 미얀마 뱀파이어와 결탁하여 돈을 벌고 있었고, 미얀마의 미래라 말하는 청소년들은 버마(미얀마)의 역사와 전통은 하나도 모르면서 케이팝에만 영혼을 판 케이팝(K-pop) 귀신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미얀마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는 한국이 되었다. 2021년 쿠데타 이후 세계의 무관심 속에 유일하게 한국이 물심양면으로 미얀마의 민주화를 적극 지지해 준 것에 많은 미얀마인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전에는 역사도 정치도 모두 무관심했던 청년들도 한국의 민주화 역사를 배웠다. 민주주의를 위해 수많은 청년이 목숨을 바쳤던 역사를 알게 되고 또한 국민의 힘으로 잘못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할 수 있다는 실제 사례를 보면서, 미얀마도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을 국민의 힘으로 다시 세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아마도 과거 단기간에 군부에 의해 진압되었던 과거 민중항쟁과 다르게 현재 2년이 넘도록 투쟁을 이어가는 미얀마 청년들의 모습에는 한국이란 본보기가 실재하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그런데 과연 한국이 미얀마의 본보기가 될 수 있을까? 미얀마와 한국의 경제 수준도 환경도 문화도 역사도 너무나 다른데도? 2021년 2월 쿠데타 초기에 한국어를 공부하던 제자들이, 군중으로 가득 찬 공연장의 열기를 느끼러 가듯, 들떠서 쿠데타 반대 시위에 참여하러 갔다. 당시 나는 희망에 들뜬 미얀마 청년들과 달리 혼자서만 심장의 통증을 느끼며 괴로워했다.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며 죽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신통력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미얀마의 역사에서 군부가 시위를 진압하는 방식은 최루탄이 아닌 실탄으로 학살하는 것이란 것을 1988년에도, 1997년에도, 그리고 2017년에는 현 쿠데타의 장본인이 직접 지휘한 로힝야 학살 과정에서도 반복하여 보여줬기 때문이다. 또한 인류 역사는 내전으로 군부와 시민군 간에 끊임없는 살인과 보복과 집단 학살의 반복을 보여줬으니까.
점점 지옥으로 향하는 미얀마의 미래에 그나마 희망을 본다면 세계 제일의 기부 국가답게 미얀마인들은 기부를 장려하고 함께하고 나아가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관습이 있다는 것이다. 대다수 미얀마인은 어려서부터 부모와 함께 승려, 어른,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시하고 나누고 기부하면서 자라나기에 어디를 가든 기부는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한마디로 엄마 뱃속에서부터 경험하는 기부행위는 나이 들어 임종 무렵 마지막 기부를 하며 죽음을 준비한다. 그런 기부 문화 덕에 아무 일면식도 없는 시위 참가자 파업 동참자 부상자 희생자 시민군과 그 가족들에게 쿠데타 초기부터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많은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 이전에는 주로 불교 사원이 모금과 분배의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각 지역 민족 모임마다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 조직들이 인간의 탐욕이 어떻게 세상을 고통으로 몰아가고, 반대로 탐욕을 떠난 보시 나눔 기부가 어떻게 세상의 고통을 줄여나가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반면 내전이란 불행의 시기에는 원수도 사랑하라는 종교적 자비심은 분노와 증오라는 비극 앞에 가르침을 줄 수 없게 되었다. 인류의 증오와 무지한 살생의 업은 언제 멈추게 될까? 부처님께서는 증오(원한)는 오로지 증오(원한)를 버림에 의해서만 멈출 수 있으며 그것은 아주 오래된 진리임을 말씀하셨지만, 이미 잔인하게 죽어간 동료들을 보며 피 끓어오른 미얀마의 청년들은 아마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현재의 비극은 또 다른 비극을 가져올 것이다. 승리란 또 다른 싸움의 시작임을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배웠기에, 소승불교의 승려로서 더 이상 투쟁과 승리를 말하지 않으며 대신 멈춤을 말하고 현재를 지켜내고 미래를 보호하는 법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침묵 속에 고통 바다를 헤쳐 나가야만 하는 이들에 대해 연민의 기도를 할 뿐이다.
고통받는 모든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 평안하여지이다.
위험 처한 모든 중생이 위험에서 벗어나 평안하여지이다.
슬퍼하는 모든 중생이 슬픔에서 벗어나 평안하여지이다.


한국인과 미얀마인들이 보낸 기부금으로, 사가잉 차웅우 지역에 있는 미얀마 스님과 시민 보호 단체가
피난민에게 쌀과 취사도구를 사서 나눠주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