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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이야기

이야기 스님의 미얀마 이야기 5.아이

[아시아의 친구들_기획연재] https://blog.naver.com/foasia2002 

2024.2.6. 이야기 스님의 미얀마 이야기 5.아이

2023년 연말에 3여년 만에 잠깐 미얀마에 다녀왔다.

첫날 미얀마 양곤의 풍경에서 기억에 남은 인상은 뜨거운 한낮 아스팔트 위에서 구걸하는 여성이다. 사거리에서 신호대기 중인 자동차의 문을 두드리며 구걸하는 그 여성은 3년 전에도, 그 이전에도 똑같은 모습으로 구걸했다. 그 여성의 한 팔에는 더위에 지쳐 고개를 떨구고 자는 아기가 안겨 있었는데, 이번 아이도 마찬가지로 잠만 잔다. 진짜 자신의 아이라면 땡볕 아래 그것도 뜨거운 아스팔트 위로 아기를 안고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미얀마인 활동가에게 물어봤더니 예상대로 앵벌이 집단에 유괴되었거나 팔려온 아이라 하며, 울지 않게 약을 먹인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3년 전 그 아이는 살아있을까? 죽지 않았다면 아마도 다른 곳에서 앵벌이를 하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와는 먼 삶을 살아갈 것이기에 연민의 마음이 일어났다.

한국에서는 앵벌이하는 어린이를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미얀마에서는 아직 곳곳에서 보게 된다. 너무나 불쌍한 표정의 아이들은 얼굴만 봐도 바로 안다. 혼자 또는 여럿이 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의 눈에는 생기가 없다. 반면에 가난할지라도 부모와 같이 사는 아이는 부모와 같이 재활용 쓰레기를 뒤지거나 도로에서 물건을 파는 경우가 많다.

아침마다 쉐다곤 파고다 남쪽 삼거리에서 신호대기 중인 자동차에 꽃과 물건을 파는 부부가 있었다. 부부는 신호가 바뀌면 도로로 나가 말없이 물건을 판다. 큰 아이는 가로수 그늘에 앉아 부모가 판매할 쟈스민 꽃을 실에 꿰고 있고, 작은 아이는 바구니 안에서 잠을 잔다. 큰 아이는 그곳에서 바로 학교로 가는 것 같았다. 파고다에서 아침 명상수행을 하고 내려오면 큰 아이는 없고 바구니에서 곤히 자고 있는 작은 아이만 보였으니까 말이다. 물론 한국에서라면 아동 학대라며 큰 문제가 되겠지만, 미얀마에서 이 아이들을 보면 불쌍한 마음보다는 부모를 돕고 학교에 가는 큰 아이가 대견해 보인다. 그리고 가로수 그늘 아래 바구니 안에서 잠든 아이는 참 평온해 보일 뿐이다. 이 아이들을 보면서 이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자애의 마음을 일으킨다.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는 좋은 감정의 아이에 대한 기억도 있다. 그 아이는 쉐다곤 파고다 남서쪽 사거리에서 신호대기 중인 자동차에 다가가 꽃을 팔았다. 실에 꿴 쟈스민 꽃을 한웅큼 쥐고 신호가 바뀌면 재빨리 뛰어가 팔을 높이 들어 꽃타래들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천연 방향제 역할도 하면서 행복의 상징인 꽃을 서너 타래 사서 거울에 매달고는 한다. 그런데 비가 오던 어느 날, 도로를 가로질러 빠른 걸음으로 뒤쫓아 온 아이가 ‘스님’하고 불렀다. 처음에는 구걸하는 아이인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필자에게 자신이 팔던 꽃을 보시하기 위해 비를 맞으며 뛰어온 것이다. 그 아이는 또래 남자아이들 몇 명과 같이 꽃을 팔았다. 갑자기 뛰어온 그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필자에게 꽃을 보시하자, 영문을 모른채 덩달어 뛰어온 다른 남자아이도 머뭇거리다가 하나 둘 자신의 손에 걸린 꽃 한 타래를 보시했다. 그날 이후 그 아이는 도로에서 필자를 만나면 큰 소리로 인사하거나 꽃 한 줄씩 보시하고는 했다.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살아 있다면 여전히 남자 아이들을 끌고 다니면서 부지런히 돈을 벌것이고, 또한 자신의 여건에 맞게 보시도 하면서 꽃다운 십대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 아이의 환한 웃음과 씩씩한 모습과 보시하는 그 마음을 더불어 기뻐하며 행복을 기원해 본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과연 어떤 어른으로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미얀마에서 만났던 수많은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미얀마에서 어린이 교육활동을 처음 시작했던 것이 10년 전이니, 이제는 대부분 어린이가 아닌 청소년이 되었고 어른이 되었다. 10년 전 시골에서 양곤으로 올라와 외국어 공부를 하던 아이 중에 만18세에 갑자기 아기를 가져 결혼하고 지금은 학부모가 된 (어른인)아이도 있다. 그 아이가 처음 아기를 가졌을 때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건지 걱정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게다가 아기를 낳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어른인)아이는 갑자기 해외로 돈 벌러 떠났다고 하니 더욱 심란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걱정은 미얀마 환경에서는 필요없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아기를 엄마 혼자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그리고 이웃이 함께 키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얀마인에게는 엄마 아빠가 참 많다. 낳아준 사람도 엄마, 길러 준 이모나 이웃도 다 엄마 아빠가 된다.

미얀마의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 교육을 위해 전통적인 가르침을 따른다. 자녀를 키우는 장소를 선택할 때 돈을 많이 벌거나 학군을 우선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좋은 마음으로 선업을 쌓기에 적합한 곳을 중요하게 본다. 적합한 장소는 좋은 스승이 있고 착한 이웃과 어울리며 그들과 함께 좋은 습관을 만들게 된다. 그래서 적합한 곳에서 좋은 스승과 좋은 이웃이 있어 자기 자신을 도덕적으로 바르게 잘 챙기는 사람은 많은 선업 또한 자연스럽게 잘 실천하게 된다. 그렇기에 좋은 장소에서 좋은 사람들 속에 자라난 아이들은 진실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는 인간 가치의 완성을 향해 지속하여 나아가 발전하며 조회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다.

비록 현재 미얀마는 매우 힘들고 어려운 환경이기에 이전 보다 도둑이 많아졌고, 전쟁터가 된 곳에서는 도덕 마저 무너져버렸지만… 그렇더라도 다수 미얀마인은 오래된 전통적인 가르침에 따라 좋은 스승과 이웃과 함께 선업을 실천하면서 서로 도우며 적합한 장소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 믿는다. 비록 주변 여건이 좋지 않더라도 좋은 사람과 함께 좋은 마음으로 서로 도우며 살아간다면 그곳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좋은 장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 가득 좋은 스승 좋은 이웃과 좋은 장소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많아져, 평화롭고 조화로운 세상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생명 있는 모든 존재가 행복하여지이다
Sabbe sattā bhavantu sukhitatt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