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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이야기

이야기 스님의 미얀마 이야기 6.가족

[아시아의 친구들_기획연재] https://blog.naver.com/foasia2002

2024.4.2. 이야기 스님의 미얀마 이야기 6.가족

미얀마에서 가족의 행복은 삶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 온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가족을 위해 일하러 왔다 ”말한다. 공장에서 일하는 기계가 되어 열심히 모은 돈을 개인적으로 저축하는 것 없이 가족에게 보낸다.

어떤 노동자는 한국에서 일한 동안 인천공항, 공장, 기숙사가 자신이 다녀본 한국의 전부라고도 말한다. 당장 목숨에는 지장없지만 나중에 암이 될 수 있으니 수술해야 한다고 의사가 말해도 수술비가 많이 드니 미얀마의 가족이 수술하지 말란다며 약으로만 버티는 미등록 노동자도 있다. 의료보험이 있는 노동자도 참고 일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미얀마에 남은 가족을 잘 살게 만들고는 자신은 중노동으로 인한 질병에 시달린다. 그리고 다른 가족 보다 일찍 죽어 버린다. 심지어는 부모 보다도 더 일찍.

조금은 극단적으로 표현했지만, 15년 전부터 지금까지 한국에서 일하는 미얀마 노동자들의 삶을 보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보인다. 물론 한국에서 번 돈으로 안정적으로 가족과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은 더 많아졌다. 그렇더라도 서양식 교육을 받은 필자로서는 미얀마인의 가족에 대한 희생을 무조건 아름답게 보기만은 어렵다. 왜냐하면 이주노동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얀마 내에서 가족을 위해 일찌감치 방직공장에서, 식당에서, 호텔에서, 시장에서, 도로 공사장에서 일하는 다수의 여성들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여성의 경우는 더 심하다. 여성이 결혼을 한 경우에는 자신의 부모와 가족에 더하여, 자신의 가족, 그리고 시부모의 가족도 모두 여성이 뒷바라지를 해야 하기에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모두 희생하기 때문이다.

미얀마 여성에 대한 하나의 예를 들면, 미얀마 페이스북에 “엄마라고 부릅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팔이 여러 개 달린 여성의 그림을 보고 미얀마인들이 남긴 댓글에는, 온통 남자건 여자건 “아, 어머니의 은혜!”하며 감격하고 눈물 지으며 칭송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African Perspective: Women’s Rights as Human Rights 
https://wunrn.com/2022/01/african-perspective-womens-rights-as-human-rights/

아프리카에서 여성의 권리와 인권 문제를 다룬 그림을 보고 다수의 미얀마인은 어머니의 은혜를 생각한다.


이러한 어머니를 두고 자식이 어떻게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는가, 나이든 부모를 위해 자식이 헌신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렇기에 자식은 부모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소유가 되어야 하고, 또 반대로 그렇게 키운 자식이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간다고 하면 얼마나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 되겠는가. 만약 그렇게 부모의 뜻을 져버리고 떠난 자식은 자기 삶의 기반이 되어 자신을 길러준 또다른 부모인 친척과 마을 어른들의 비난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부모의 뜻을 따르지 않는 다는 것은 가족공동체 뿐만 아니라 마을공동체에서도 버림받을 각오를 해야 하는 엄청난 일인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삶의 가치와 목적을 잃어버리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설사 가족과 고향을 버리고 돈을 벌어 자립하더라도 떠돌이가 되어 나이가 들수록 고향과 가족에 대한 향수와 죄책감에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니면 정말 큰 성공을 거둬 금의환향하여 가족과 마을을 다 도울 수 있는 힘과 재력을 키워야만 한다. 그런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나 희망이 없다면 쉽게 가족을 버리고 떠나지는 못할 것이다.

이것은 미얀마 불교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부모님의 은혜는 드높아 평생을 다 갚아도 부족하다 말한다. 그래서 미얀마에서는 한국과 달리 출가하여 승려가 되어도 부모에 대해서는 효도를 해야만한다. 실제로 도시로 가거나 힘이 생긴 스님들은 반드시 가족과 친척이 살고 있는 고향을 매년 찾아가서 가족과 마을 사람들을 위한 보시를 해야하는 관습이 있다.

필자가 미얀마 양곤의 수행센터에 처음 갔을 때, 그곳에서 수행지도를 하는 미얀마 스님의 방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방엔 누울 자리만 남겨두고 방 안 가득 온갖 물건을 쌓아놓은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모습에 실망한 필자는 출가한 수행자가 재물에 대한 욕심이 많다고 속으로 비난했었다. 후에 국제명상센터가 아닌 현지 로컬 사찰에서 미얀마 스님들과 함께 지내고 나서야 그것이 오해였다는 것을 알았다. 도시의 큰 절에 사는 스님들은 1년에 한 번은 고향에 돌아가 가족과 마을 사람들에게 베풀어야만 하는 것이 공공연한 관습이었던 것이다. 도시에 사는 신도들은 시골 고향으로 가는 스님에게 시골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 많이 보시(기부)하라고 평소하던 보시에 더하여 또 보시를 한다. 이렇게 미얀마 스님들은 정말 지극한 효자의 역할과 고향 마을 사람들에게 도시의 부를 재분배하는 통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또 하나의 의무임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스님들이 고향 마을로 가는 길을 포장하고 다리를 놓고 전기를 가설하고 학교를 짓고 운영하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여 사회의 존경을 받는다.

이렇게 미얀마인의 삶을 지배하는 전통적인 가족관도, 미얀마의 개방과 민주화 과정, 그리고 쿠데타 이후 혼란 속에서 세대간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특히 한국과 서양드라마를 보며 청소년기를 보내고 유학을 온 학생의 경우는 이미 다른 세상을 경험했고 가족과 떨어져 해외에 정착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음을 체험했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 얼마전까지만 해도 필자는 미얀마 청년들에게 미얀마에서는 일도 없고 기회도 없으니 가능한 고향을 떠나 해외로 떠나 미래를 준비하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이런 권유를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최근 미얀마 내전에서 점점 군부가 패퇴를 하게 되며 18세~35세 남녀 청년들에 대한 군대 징병법을 발표했다. 그 뉴스로 인해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걱정 근심 불안 분노의 글들로 넘쳐났다. 해외에서 일하는 미얀마 청년들은 미얀마에 남아 있는 가족이 군대로 끌려가 총알받이가 될까봐 걱정이 태산이 되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대구 미얀마사원에 한 유학생 한 명이 다음 주에 미얀마에 들어간다며 인사하러 왔다. 필자는 매우 의아하게 생각하며, “아니, 지금 미얀마 들어가면 징병법도 시행되는데… 미얀마 가면 돈도 못벌고, 기회도 없고…. 왜? 남들은 다들 한국에 오려고 그렇게 기를 쓰는데… 한국에서 돈을 벌어 가족에게 보내는 것이 더 이익이지 않아? 잠깐 다녀오는 것도 아니고 왜 아예 미얀마로 간다는 거지?”

“부모님을 모시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었어요. 그래서 가야해요. 부모님을 봉양하러 가야해요.”

공교롭게도 그날 또 다른 미얀마 현지 학생의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징병법 발표 전에 운 좋게도 한국 유학 비자를 받았다는 학생이 있었다. 그런데, 그 학생이 징병법 발표 이후 유학 비자를 포기했다고 한다. 왜? 도대체 왜? 자신이 한국으로 떠나면 가족에게 피해가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자신의 미래를 희생하여 가족을 보호한다는 말이었다.

같은 날 생각지 못한 의외의 사례를 연속하여 접하게 되니, 더 이상 미얀마 청년들에게 답답한 미얀마를 떠나 너른 해외에서 자신의 삶을 살라 권유하지 못하게 되었다. 징병법 발표로 미얀마 청년들이 앞다퉈 해외 출국하려고 난리날 것으로 생각했지만 필자는 오히려 반대 사례를 경험하게 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그동안  미얀마인을 보며 ‘가족이란 이데올로기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삶에 행복이 있을까?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가치를 행복이라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현학적이며 합리성을 우선한 비판적인 생각과 말을 멈추게 되었다.

그리고 작년에 인천의 디아스포라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은 미얀마 청년들의 단편 다큐멘터리를 다시 봤다. 미얀마 현지에서 싸우는 친구와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가족과 달리 편안하게 살아가는 자신을 보며 죄책감을 느낀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겁게 웃고 여행하며 행복감을 느낀 순간 죄인이 된 듯하다…. 가족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인터뷰를 한 미얀마 청년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말한다. 반드시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https://www.youtube.com/watch?v=DzkBzp_RNkQ&t

지금은 멀리있지만 - 대구경북 미얀마 청년들이 제작한 단편 다큐멘터리

https://www.youtube.com/watch?v=DzkBzp_RNkQ&t

 

P.S.

1. 대구 미얀마 청년들의 미디어팀 활동은 현재 비공개로 진행하고 있다. 미디어팀의 활동이 많아지자 팀원의 미얀마 가족이 위험해진 경우가 몇 건 발생했다.

2. 미얀마에서 징병법이 시행되며 또 다른 비극이 이어지고 있다.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군입대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의 소식도 보게 된다.

지방에서는 마을마다 징집대상자수가 할당되어 추첨을 통해 입대할 사람을 결정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선택된 청년이 자살했다는 소식, 길을 가다 갑자기 납치되듯이 끌려간 청년들의 소식, 징집대상자가 되자 군부가 아닌 시민군에 입대했다는 청년의 소식, 징집을 위해 마을을 돌아다니던 공무원이 시민군에게 암살되었다는 소식, 점점 격화되어가는 내전으로 국경 지역 난민만 문제가 아니라 미얀마 내 난민도 점점 많아지면서 전체 250만명의 난민이 생겼다는 소식…

내전이 장기화 되면 한국영화 ‘태극기휘날리며’에서 다루었던 전쟁의 비극이 미얀마에서도 일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긴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만 하는 미얀마인들이 안전하기를, 힘겨운 세상을 잘 버텨내기를!

생명 있는 모든 존재가 행복하여지이다
Sabbe sattā bhavantu sukhitattā

3.
2024년 4월 2일 
- 미얀마는 현재 내전의 격화와 장기화로 국민들의 피폐함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을 폭격과 방화로 인해 미얀마 내 난민이 250만명 이상 되었다고 합니다.
- 이에 미얀마 내 난민을 돕고 어린이교육을 지원하기 위한 후원 계좌를 만들었습니다.
- 매월 후원금을 모아 미얀마 현지 활동가에게 환전하여 현금으로 보내겠습니다. 
  (미얀마인 활동가에게 후원금 사용에 대한 증빙을 요구하지 않음을 양해바랍니다.)
- 기부금 영수증은 종교단체로 발부 가능합니다.
* 후원 계좌 - 사단법인 마나빠다이 불교센터 KB국민은행 644601 04 257672
* 후원 CMS 자동이체 신청 
https://docs.google.com/forms/d/1sEwzdQmgk-MpVfVIRtJ1T8taab8lSpSi6dXqrsNix1k